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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제 글이 의미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주식을 하는데 있어 지금까지의 관성을 그대로 가는 것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더 좋겠구요. 양성평등은 사실 그 안에 들어 있는 의미를 정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평등인가? 기회의 평등인가 기계적 평등인가? 이 평등에 대한 조금 현실적인 예로서, 소방관 시험과 경찰 시험이 있는 것





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 멀리 보이는 건물이 사고가 났었던 발전소 건물이고 당시에는 발전소 전체를 아치형 구조물로 씌우는 '쉘터'공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라 저렇게 발전소 전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기념관 안에는 이렇게 미니어쳐로 체르노빌 발전소 전체 모양과 주변 원자로들도 볼 수



거주하는 케하 차주입니다. 저는 2층에서 살고 있고 3층에서 불이나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을 이동시키기 위해 나왔습니다. 바로 앞에 주차한 K7 차주도 바로 나왔서 차를 옮기려 하였으나 도로에 불법주차한 차량이 가로막아 연락을 취하였으나 연락을 받지 않았고 5분뒤 출동한 소방차에 가로막혀 불법주차 차주가 나타났지만 결국 아무 차도 이동하지 못하였습니다. 진압과정에서 건물 유리를 부숴 연기 통로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제 차가 많이





직원 2명을 직위해제 징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국내사이트에 있는 동향보고서는 접혀있는 것이고 해외사이트에 있는 보고서는 펴진 상태여서 최소 2명이 유출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공무원들이 보안의식, 문제의식이 없어 이 부분에 대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어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직원들에게 줄 초과근무수당 164억원을 안주고 버티다 20%의 가산금리가 붙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371억원을 주게 됐다”면서 “서둘러 지급하라”고 요청했다.





없는 젊은 애들 중심입니다. 생각해보면 거의 반년 다되가는 대규모 시위인데 거의 평화시위입니다. 이 자체로 양쪽 다 대단했단 겁니다. 스티븐 로의 복귀 전까지만 해도 한국 촛불시위에 버금가던 송환법 반대시위를 성공적으로 통제하던 경찰들이었습니다. 전경출신 분들도 계시니 아시겠지만 현장 질서 유지하는 경찰들도 수고가 많으신 데 반년 동안 과잉근무 중이었단 말이죠. 홍콩반환 뒤 꾸준히 경찰의 과잉행위에 따른 인권후퇴가 발생하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집에 들어가는데 제 집 밖 복도에서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벌집으로 보입니다. 어제 아질게에 글을 올려 벌집임을 확신하고 119에 신고하기로 합니다. 다만, 벌집임을 자각한게 새벽이라 다음날에 119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13시 16분에 119에 전화를 겁니다. 13시 20분에 소방관분께서 전화를 주십니다. 정확한 벌집 위치를



대만도 치자면서 군사적 긴장을 극대화해 권력을 유지할 건데, 트럼프는 이 새끼가 니네 나라 문제니 알아서 해라. 근데 지켜 보겠다? 이래놓고 요코즈카 항에 최신예 강습상륙함을 배치하질 않나 대만해협에 미군 구축함 항행시키질 않나… 이 새끼는 말과 행동이 지 멋대로라 도무지 예측이 안됩니다.



모두 48명이 올해 3분기 대전시 '하트세이버'로 선정됐다. 둔산소방서 이석원 소방장 등 구급대원 43명과 일반시민 5명이다. 이들에게는 다음 달 하트세이버 인증서와 배지 등이 수여될 예정이다. ============================= 교육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짝짝짝!!!! 잘했다.. 판사님들!!! 일부 판새들도 있지만 저런 분들도 있어야지...!! 일많이 해서 돈 더주는 거니까 반대로 일안하면 깍아야 하지





거라는 게 곳곳에서 보입니다. 이게 좀 나뉘는데요. 그러니까... 시위진압대로 참가하면 개 또라이 모드가 되는데 분산되서 통제업무를 맡으면 정상적인 경찰로 움직이더란;;; 좀 더 설명하자면 케리 람이 복귀시킨 경찰청장이 중국 인민무장경찰의 도움을 요청했고 이들과 함께 움직이면 개또라이. 지들끼리 있음 그나마 정상행동. 머리가 바뀌니 돌변하는 경찰+중국 인민무장경찰의 가세 현재 홍콩정부는 케리 람의 말 뿐인 송환법 폐기발언(하지만 내 후임이 할거야)과 친중파로 악랄하기로 유명한



어디를 살던 상관없었어요. 제가 클때만 해도. 저도 부모님 가세 기울고 집도 잡히고, 부도라고 보면되겠네요. 아버지 다 정리하고 할아버지 하시는 과수원서 어머니랑 일하시고 저도 그리 잘살다가 갑자기 나락이었지만 또 사람은 다 적응된다고 공부도 못했고 그나마 손재주가 좋아서 전문대라도 가서 금형 기술배우고 남에 밑에서 밥빌어먹다가 맘먹는 사람들과 창업해서 운영중이지만 잘벌던 못벌던 외국인노동자들 차별해본적도 없고 하고싶지도 않고. 제가 그냥 살며 느낀건 살아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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